그리운 히말라야

차마고도를 보면서

Krishna4c 2007. 3. 12. 09:18

KBS와 SBS가 프로그램 제재의 동일함과 그 제작자의 일부 촬영분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 같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KBS가 독립 제작자의 아이디어를 가로챈 처사로 여겨집니다.

 

그런 짜증나는 사연에 얽힌  제작 뒷배경은 놔두고 , 저는 일단 히말라야에 깃들어 사는 이들의 얘기가 나오면 숨 죽이며 봅니다.

KBS측의 차마고도에서는 소금과 옥수수 낱알을 얻기 위해 눈 덮힌 히말라야를 넘는 그 위험천만한 삶을 신산하고 고단한 것으로 봤지만 , 저는 그들의 삶이 숭고하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 길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불법 전파의 길이 와 닿아 지금 불법 인연 만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왜인지 아직도 그 험난하고 척박한 그 곳이 찬란하게 다가옵니다.

가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그 자연과 일치하는 삶이 부럽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다시 태어난다면 그 곳에 나게 해달랬더니 , 아들 아이가 다시 안태어나려고 기도하는 것 아니야 합니다.

 

맞습니다. 맞지만 제 수준을 알기에 그 수행이 , 순례가 전부인 그들의 삶을 온전히 제 것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일상들을 그리 조율하려고 노력은 하고 삽니다만 , 참 많이 흔들립니다.

 

그래도 뿌리 뽑히지 않을 것을 알기에 감사하며 삽니다.

 

아래는 제가 가는 임현담 샘 홈피와 SBS의 홈피에 있는 글입니다.

 

창작하는 사람으로 그 오리진이 있는 SBS의 손을 들어주고 싶내요. 글자체를 바꾸는데 도중에 안 바뀐 곳이 있어 보기가 좀 상그럽내요. 이해 바랍니다.

 

다음 주 18일에 SBS에서 그 '차마고도'를 만나보십시오.

 

SBS 스페셜 _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제작 노트 중에서]

 다시 차마고도의 취재에 들어가고나서 1년쯤 지났을 무렵인 2006년 초, KBS에서 <10부작 티로

드(Tea Road)>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연말에 방영키로 결정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캄의 가장 중요한 의식이 밀집되어 있는 신년 축제 행사 촬영을 하루 앞두고 그동안 나와 함께 캄의 계곡을 누볐던 제작팀원이 KBS 팀에 스카웃되어 한국으로 귀국해 버렸다.

 

 2년간 발품을 팔아 겨우겨우 모은 소중한 취재정보들과 함께. 내 촬영 스케줄에 차질을 빚은 사건이었지만 당시 나는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했다. 중국어는 물론 티벳어도 통하지 않고 골짜기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캄. 행사 하나를 취재하려면 직접 그 마을에 찾아가서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겨우 날짜를 짐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캄인 것이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드넓은 지역을 커버해야 하는 그들의 앞길에 놓인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6월, 나는 칭짱철도의 개통식 취재를 위해 티벳의 수도 라싸에 있었다. ‘현대판 차마고도’로 불리는 칭짱철도는 중국공산당창건기념일인 7월 1일에 맞춰 개통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주인 없는 포탈라 궁 전면에는 애드벌룬이 떠 있었고 ‘칭짱철도 개통 경축. 당 중앙의 세세한 관심에 깊은 감사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7월 1일 오전, 라싸역 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장에 나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공안당국이 촬영을 엄격히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식장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일반 티벳인들도 출입이 금지되었다. 개통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칭짱철도 공사를 시행한 중철(중국철도공사) 제10국 공사관계자와 일부 초대받은 티벳 관리, 그리고 중앙에서 내려온 공산당 간부들뿐이었다. 비밀스런 개통식을 벌이고 있는 4미터 높이의 붉은 담장 밖에서 나는 앞으로 티벳과 캄에 닥칠 미래를 생각했다. 이날 하루종일 중국 전역의 TV는 칭짱철도가 티벳에 가져올 경제혜택과 관광객 증가에 대한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라싸 중심가에서 2시간 넘도록 쉬지않고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가운데 교외의 야영지에서 열린 마지막 차마고도 마방의 해단식을 지켜보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칭짱철도 촬영을 끝낸 2006년 가을, 전에 마방 캐러밴 취재 중 절벽에서 떨어져 촬영이 중단됐던 장면을 11월의 캐러밴 시즌에 맞춰 다시 촬영하려고 마방 마을을 방문했다. 그런데 촌장이 “여름에 KBS팀이 와서 마방의 캐러밴 장면을 이미 촬영해 갔다”며 나더러 동일한 팀이 아니었냐고 묻는 것이다.

 

 여름철은 이들이 송이버섯을 따는 시즌으로, 마방은 이 계절에 캐러밴을 움직이지 않는다. 캐러밴은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의아한 마음을 가지고 서울에 돌아왔더니 KBS가 만든다던 ‘2006년 12월 방영 예정, 10부작 티로드’는 어느새 ‘방송 80주년 특집, 2007년 상반기 방영 예정, 6부작 차마고도’로 제목과 기획이 변경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방송현실에서 편당 2억이 넘는 엄청난 예산과 인원, 장비를 쏟아 붓는 거대 방송사의 대형 프로젝트는 독립제작사의 작업과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3년 전부터 제작이 진행되고 있는 아이템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제목을 가지고 촬영하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2006년에는 청해성에서 작업을 하면서 MBC의 황하 10부작 취재팀과 자주 맞닥뜨리기도 했다. 10여명의 스태프에 경량항공기와 모터보트까지 가지고 다니던 황하 취재팀은 황하 유역에 볼거리가 없다는 이유로 황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청해성 남부 지역, 즉 과거의 캄 중앙부까지 취재범위를 넓혔고 이는 나의 취재구역과 자주 겹쳤다. 방송사의 대형 프로젝트를 지켜보면서 지난 3년간 작업했던 촬영 테이프가 창고에서 썩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차마고도 위에서 지낸 지난 1000일간의 기록을 두 편의 다큐멘터리로 엮어내기로 했다.

 그동안 내가 캄에서 보고 들은 그들의 피눈물 나는 얘기, 그 구구절절한 얘기들을 앞으로도 방송 프로그램에 담아낼 수 있을까. 티벳 독립운동에 관심이 많은 이들조차 1959년 중국의 티벳 침공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1950년의 캄 침공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온 세계가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지금 그 사실을 새삼 들추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캄이 멸망한 이래 캄의 모든 지명은 전부 중국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캄의 주민인 캄파의 이름도 과거 우리의 창씨개명처럼 중국식으로 바뀐지 오래다.

 

 가령 골무드라는 지명은 중국식으로 꺼얼무가 되었는데 이제는 누구도 골무드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제쿤도라는 지명도 옥수현으로 바뀌었다. 중국의 관점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는 티벳 민족이 한결같이 장족으로 표현이 된다. 그 장족으로 표현되는 티벳인 가운데 1/3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티벳인으로 부르는 것보다 캄파로 불러주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식민지 시대를 겪은, 남의 지배를 받아본 나라에서 출생한 사람으로서 내가 캄파들에게 가졌던 연민과 동정, 그들의 피로 얼룩진 사연은 가슴에 묻어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차마고도에 대한 기록만은 계속해 나갈 것이다. 차마고도를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들, 캄파의 삶 속에서 차마고도가 사라질 때까지.

 

 

인공위성에서 아시아 내륙을 내려다보면 아주 독특한 형세를 지닌 곳이 있다.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광활한 고원평원이 마치 바다처럼 펼쳐져 있고 6~7천 미터급 설산 고봉들은 거대한 파도의 포말처럼 보인다. 험난한 협곡을 빠져나온 강물은 마치 뱀처럼 흘러내려 양쯔강과 메콩강을 비롯해 대륙의 수많은 젖줄을 이룬다. 고원을 가로지르는 철도와 거미줄처럼 나 있는 도로는 현대 문명에 대한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풍경은 아시아의 한 켠에 아직 문명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티벳 사이에 숨어있는 ‘캄’이다.

 

지금은 지도상에 지워진 이름이 된 캄 지역은 2006년에 들어서야 공식적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허가된 곳으로, 그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땅이었다. 방송을 통해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캄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시아에 남은 마지막 오지다. 그러나 캄의 험준한 산과 계곡, 그리고 광활한 평원 구석구석은 끊어질듯 이어지는 위태로운 길, 차마고도에 의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환하면서 생긴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앞선 남아시아의 문명교역로였다. 그 차마고도의 중심지가 바로 캄이다.

캐러밴 교역의 역사를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대지, 과거 한 번도 외부세력에 정복된 적이 없었던 잃어버린 고대 왕국, 1971년까지 중국에 저항했던 잊혀진 전사들의 땅인 이곳의 비밀을 벗겨보려 세계의 유명 방송사들이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캄은 제대로 속살을 내비친 적이 없다. 2004년부터 3년 동안 1000여일 동안 취재한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캄’은 고대의 문명교역로인 차마고도 위에 서있는 마지막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로, 세계 방송사상 최초로 차마고도의 베일을 벗긴다.


차마고도(茶馬古道)와 마방(馬帮)은 무엇인가

야생차는 원래 티벳과 중국 사이의 캄 지역이 원산지이다. 육식을 주로 하는 티벳 고원의 유목민들은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들여온 차를 마시는 것으로 소화를 돕고 비타민 등 영양성분을 보충해왔다. 특히 당나라 때부터 불기 시작한 티벳인의 차 마시기 열풍은 차에 대한 수요를 점점 늘어나게 하고 이것은 차와 말을 교환하는 차마 무역을 대대적으로 촉진시켰다. 중국은 국방과 운송에 반드시 필요한 말의 수요를 차마무역을 통해 보충했다. 그 차마무역이 이뤄지던, 실낱같은 교역로가 바로 차마고도이다.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중국과 티벳 사이에 모세혈관처럼 퍼져있던 산악교역로를 총칭하며 그 중심지가 바로 캄이다. 문명교역로로서의 차마고도는 중국과 티벳 사이의 서로 다른 문명과 문화가 전파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해 왔다. 쓰촨성과 윈난성의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차는 보부상을 통해 캄의 여러 거점으로 운반되었고, 여기로부터 마방이라는 대상들에 의해 티벳의 라싸까지 운반되었다. 마방(馬帮)은 ‘말무리를 이끄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사막의 캐러밴과 같은 운송조직이자 상업집단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마방들은 엄격한 조직의 통제아래 길을 떠난 후 반년 정도의 풍찬노숙 끝에 고향에 돌아왔다. 오늘날 이같은 진정한 마방은 사라져버리고 봄철과 가을철에 짧은 거리를 움직이는 마방만이 남아있다.


캄은 어떤 곳인가

캄은 티벳과 중국 사이에 자리잡고 있던 부족국가의 연합체로, 전체 티벳의 1/3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을 지배하고 있었다. 평균해발 4천 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인 캄은 1년의 절반 이상 바깥세상과 소통이 두절된다. 중국의 마지막 미개방 지역으로 남아있던 이곳은 2006년에 비공식적으로 개방이 되었으나 접근 루트가 험난하여 아직도 외지인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다. 캄의 주민은 캄파로 불리는 유목민들로, 거친 성격을 가진 전사들이다. 1950년 캄이 중국에 병합되자 캄 출신 차마고도 마방들은 중국에 대한 게릴라전을 벌이게 되었고 이는 결국 1959년의 티벳 점령과 달라이라마의 인도 망명을 초래하게 된다. 그 이후 캄은 철저하게 외부와 격리되었고 베일 속에 가려져 왔다. 중국 당국은 캄을 티벳 문화권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존재가치를 없애기 위해 중국의 행정구역인 티벳자치구를 비롯하여 사천성, 운남성, 청해성, 감숙성 등 여러 성으로 분할, 흡수시켜 버렸다. 캄은 공중분해가 되었지만 이들의 독특한 문화는 문화대혁명의 혼란기를 거치면서도 모질게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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