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부다가야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 부처님 시절부터 있던 '가야' 그 곳 네이란자라 굽이쳐 흐르는 곳( 건기라 물은 많이 없고 그 구불 구불 유장한 강의 모래만 보였습니다 ) 을 바라보며 부처님이 올라 수행처를 물색했다는 가야산에 올랐다.
가야 시내와 전정각산 보드가야까지 다 내려다 보인다. 산 정상은 어김없이 힌두들의 성소다.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 - 우리를 환영하러 나와있다.
전정각산에서 내려다 본 수자타 아카데미 전경
가야산에서 부처님이 찾아낸 '시타림 - 시체를 버리는 곳 ' 이 전정각산이다. 이 곳에 정토회에서 마을 주민과 만든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다. 전정각산 주변 마을은 아직도 대부분 불가촉 천민들이 거주한다.
수자타 아카데미로 들어가는 길은 좁아 키가 큰 풀들이 차창을 넘고 건기라 땅이 말라 먼지가 희뿌옇게 일어나서 좀 덥지만 창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길 밑의 숲에서 아이들은 차를 따라 뛰었다.
지나는 마을마다 환영 행사가 준비되어 주민들과 아이들이 모여 북도 두드리고 타블라도 두드리고 했다.
수자타 아카데미 일정이 있어 1호차에 있는 스님과 몇몇 법사님만이 대표로 꽃다발을 받는다.
이방인이지만 이미 친숙해진 한국 정토회 사람들에게 보내는 그들의 눈길을 따뜻함과 감사함을 담고 있었다.
학교 앞에는 아이들이 금잔화로 목걸이를 만들어 하나씩 일일히 순례객들에게 걸어주었다. 내게 꽃은 준 작은 사내 아이 손을 잡고 학교로 들어간다. 아이는 무척 수줍어 했다. 아홉살인데 1학년이라고 했다. 말라깽이였다. 아이 손은 금방 바스라질 듯 했다.
학교는 꽤나 넓었다. 그리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편안했다. 부처님이 오래 계셨던 곳이라 그런지 너른 힌두스탄 평원만 보다 와서 그런지 300미터나 될까 말까 한 전정각산에 빨려들 듯 좋았다.
간단한 환영식 후 전정각산을 올랐다. 오르기 전 산 밑에서 스님의 법문과 이 지역에 대한 사전 설명을 듣고 경전을 읽었다. 경전은 그대로 이야기 책이었다.
또 눈물과 감사함이 배 저 밑에서 올라왔다.
유영굴
유영굴 , 부처님이 그림자를 남겨놓고 가셨다는 곳 중 하나였다. 가만히 앉아본다. 숨이 멎을 만큼 가슴이 차 온다. 얼마나 이 산을 떠날 때 미련이 많았으면 '그림자'를 남겼다고 하셨겠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부처님이 성도하신 부다가야만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곳만을 신성시한다. 그러나 나는 부다가야의 깨달음이 있기까지의 그 과정들이 더 절절히 와 닿았다.
전정각산
산은 대리석 산이라 튀어나온 바위가 조금 미끄러웠다. 그리고 아쇼카왕이 세운 전탑들이 무너져서 원래 그 곳에 있었던 돌처럼 붉은 벽돌이 뒹굴었다. 멀리 부다가야 대탑이 보였다. 여름에나 가끔 볼 수 있는 희유한 일이라고 스님이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이 산을 얼마나 누비고 다니셨을까? 산능선은 칼 산이라 낮지만 산을 타는 스릴이 있었다.
산을 내려와 수자타 아카데미에 준비된 밥을 먹었다. 전기가 아직 안 들어오는 곳이라 발전기로 잠깐 등불만 밝힌다.
우리 순례객 일행은 고향 집 찾아온 듯 편안했다. 교실에 간이 침대를 둔 도미토리였지만 찬 물도 미지근해서 샤워도 하고 빨래도 했다. 물이 모자라는 곳이니 하지 말랬는데 습관에 끌려 했다. 오랜 만에 활개를 폈다.
잠자리는 부처님 무릎을 베고 잠든 듯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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