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하면서

성지 순례기 ( 7 ) - 영축산.죽림정사.칠엽굴.나란다 대학

Krishna4c 2008. 3. 26. 12:56

 

영축산

 

빔비시라 왕과 아들 아잣타 사투왕 위제희 부인의 이야기가 있는 왕사성 라즈기르로 새벽에 향했다. 라즈기르로 들어와 먼저 빔비시라 왕의 감옥터와 지이바카 망고 동산을 지났다. 영축산 ( 그리드라쿠타 , 기사굴산 )으로 가는 길은 법화경을 신봉하는 일본인 신도들이 길을 잘 다져놓고 꽃을 가꾸어 그 어느 성지보다 정돈되어 보였다.

 

성도 후 부처님께서 이 산에 자주 머무시면서 법화경과 보적경 등 수많은 대승 경전을 설하셨다고 한다. 산에 다녔던 내 눈에는 사방이 탁 트인 영축산 풍광이 '영산회상'의 그림이 충분히 사실적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날씨는 한없이 맑았고 하늘은 마치 가을처럼 높았다. 그리고 그 독수리 닮은 봉의 위에 부처님이 앉으셨던 봉에 가니 만가지 시름이 사라지는 듯 하였다.

 

 

 

 

 

 영축산의 모습들

 

영축산에서 하염없이 있어도 전혀 지겨울 것 같지 않았지만 이후에 갈 곳이 많아 빨리 빨리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영축산 곳곳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수행한 굴들이 있었다. 그리고 데바닷타가 부처님을 살해하려고 돌을 굴렸을 것 같은 장소가 그대로 있어 경전의 말씀이 사실감 있게 느껴졌다.

멀리 다보탑이 솟아올랐다는 곳에도 역시 힌두교 탑이 들어서 있었다. 인도의 불교 성지들은 예외없이 다 힌두교에 의해 왜곡되고 파괴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영단 아래에서 예불을 드릴 때 온전히 마음이 부처님께 가 닿았다. 마치 부처님 살아 생전에 그 분을 뵌 것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얼마나 감사함이 솟아나던지 !

 

그리고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로 갔다. 대나무가 여럿 얽혀있는듯한 인도의 거무티티한 대나무가 숲을 이룬 곳에 연못이 크게 있었다. 참 편안했다. 부처님 성지마다 예외없이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에 내려앉은 듯 편안함이 있었다.

 

 

 

 

 

죽림정사 모습들

 

그 이후 급하게 칠엽굴로 이동했다. 제 1차 결집이 이루어진 곳으로 굴 7개가 마치 나뭇잎처럼 펼쳐진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 곳은 우리 300여명의 순례단이 앉아도 조금 자리가 남았다. 낮은 굴과 굴 앞의 좁은 터를 보면서 500명의 장로가 모인 것은 거짓이라 말하는 스님들도 계시다는데 , 걸식을 하던 2500년전 수행자들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앉고도 남을 자리 같았다.

이 곳 역시 힌두교나 자이나교도들도 성지로 삼는 곳이라 어떤 이들은 자이나교 창시자인 바하비르처럼 성기를 들어내고 수행하는 수행자를 봤다고 했다.

 

한 낮이라 돌로 만들어진 계단들을 오르며 신발과 양말을 벗고 올랐다. 나는 내려가는 것보다 올라가는 것이 훨씬 좋다. 칠엽굴 안에 들어갔다가 굴 앞에 모여 스님의 옛날 얘기같은 부처님 당시 얘기를 들으며 시내를 내려다 본다.

 

 

 

 

 칠엽굴

 

그리고는 나란대 대학으로 이동했다. 터만 남은 곳이지만 원래 규모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는 넓은 곳이었다. 5세기 7세기 9세기에 걸친 증축으로 이루어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이었다. 스승  한 사람에 학생 둘에게 방 하나씩이 배정되었다는 방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절대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제주도의 집 앞에 걸쳐놓은 나무처럼 나무를 걸쳐두고 나무가 걸쳐져 있으면 들어오지 말란 뜻이고 나무가 내려져 있으면 들어오란 듯이라고 했다.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하는 나란다 대학의 벽돌색들은 미묘하게 여러 톤을 내고 있어서 아름다웠다. 하루 종일 뒹굴며 여기 저기 유적들을 헤메다니고픈 곳이었다.

 

 

 

 

 

 

 

 

 

나란다 대학의 이 곳 저 곳

 

곳곳은 당시의 건축술을 엿볼 수 있는 탑과 발굴중인 건물들이 즐비했다. 현재까지 발굴된 것이 원래 규모의 10분의 1 밖에 안된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길이 없었다.

 

파트나 숙소로 이동하려는 차에 순례객들이 과일을 사서 올라온다. 이제 며칠 적응해서 길거리표 음식도 다들 잘 산다. 작은 마을에 차가 열 대나 오니 장사들도 분주하지만 이동할 길이 먼 우리 순례단은 길을 재촉한다.

 

숙소로 와서 또 밥솥에 밥을 해서 먹는다. 고단하지만 밥맛은 좋다. 하루 종일 봐야 할 유적들은 너무 빨리 지나온 아쉬움이 짙게 남는 날이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