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이 없는 사람 ,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겠습니다.
이렇게 매일 아침 108배 참회 기도를 하며 발원합니다.
수행자가 느낌을 믿으면 안되는 것이지만 , 신들린 것처럼 누군가와 시비를 할 때가 있습니다. 카페같은 웹상에서.
그 시작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그 것도 가만히 보니 앞 뒤가 안 맞는 글에 민감한 내 업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명백한 거짓이 느껴질 때입니다.
또는 뭔가 의도를 숨기고 가장할 때입니다.
[ 부처님 관세음 보살님 진실한 불자가 되겠습니다.
성질내지 않겠습니다.
얼울하고 분하고 답답하고 가슴 칠 일이 와도 참겠습니다.
제 주위에 고쳐지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가만히 있겠습니다.
깊이 참회합니다 ]
기도문을 새기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 그렇지를 못합니다.
내가 한 생각 일으켜서 다른 이를 시비하는 것을 알면서도 ' 나다' ' 내 것이다 ' ' 내가 옳다 ' 는 생각에 사로 잡히면 헤어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아니 바로 알아채고 ,
' 너를 봐라. 너는 거짓이 없더냐?'
' 그는 그저 그일 뿐인데 , 그는 나와 다를 뿐인데 내가 시비를 하는구나 '
' 경계에 끄달리는구나 '
안으로 돌이켜도 이미 시간은 늦습니다. 상대에게 무수한 상처를 내며 업장 높이 쌓아올린 다음입니다.
사실 . 경험. 상식이며 예절 , 심지어 부처님 법까지 들이대며 남에게 비수를 겨눈 뒤입니다.
' 무안의비 설신의 ' ' 조견 오온개공 '
외어도 이미 올라와 버린 화는 가라않지 않습니다.
' 내가 옳다'는 칼을 상대가 지쳐서 어떤 형태로든 나가 떨어질 때까지 휘두릅니다.
執捉이 집요함이 내가 생각해도 지겨울 만큼입니다.
오늘 아침도 어떤 청춘의 귀한 시간을 몇시간 제가 축낸 것 같습니다.
꼭 기도를 어떤 이유로든 빼먹은 날 그렇습니다.
몸에 끄달리는 날 그렇습니다.
얼마나 남을 시비하는 업이 쌓였으면 가슴 칠 일이 와도 참으라고 했을까요?
옳고 그름이 없음을 알아 내려놓아야 하는데 웬 시비가 , 웬 사량 분별이 그리 많은지......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상당 기간 기도를 하며 참회하는데
참회가 다 될 때까지 그 당시의 일이나 상대방의 마음이 생각이 나며 괴롭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겠다고 해놓고 괴롭습니다.
탁 놓으면 그 상대에게 머리라도 조아려야 하는데 , 그게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까닭입니다.
오늘은 상대방이 어쩌면 정말 보이기 싫은 치부까지 벗겨냈는지 모릅니다.
왜 자비심을 못낼까요?
부처님과 보살을 삶의 모범으로 삼기로 하고는.
정토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서 나를 버리고 내 것을 버리고 내 고집을 버리고
오직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보살이 되겠다고 해놓고 왜 행동은 이리 엇나갈까요?
참으로 머리숙여 사죄합니다.
그 청춘에게.
( 이런 수행에 관한 글은 수행하는 이가 아니면 오해를 하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가 오는 공개 웹에는 못 씁니다. 더 큰 파장을 불러오니까요 )
그저 기도하며 참회하는 수밖에는 요.
요 며칠 기도에 앞서 카페 들락거리는 습의 과보가 즉각 온 것 같습니다.
아직도 ' 내가 옳다'고 합니다 '
핑게가 나오는 것 보니까요.
이 아만에 가득 찬 마음 때문에 또 몸이 고생하겠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