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근 자꾸하면 버릇들어 '
무슨 농담처럼 들리는 이 말은,
제가 안면있는는 시나리오 쓰는 심산씨가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출근해야 하는 일을 갖게 된 백수였던 후배에게 해준 말입니다.
그리고 제 생일 전 날 와인을 몇 병 깠던 그 날 , 좀 늦게 배종옥씨도 연극하는 이들과 합류했었는데
그 날 인터뷰가 있어 미장원에서 화장을 해서 배우같이 보였습니다. 보통 수행 모임에 나올 때는 맨 얼굴이라 배우같다고 생각 안했거든요.
의상도 화장 못지 않아서 역시 배우 같았는데 , 실크 스카프가 블랙과 블루가 조화를 이룬 것이 끌리대요.
유일하게 스카프에 사치하는 나인지라 자세히 봤더니 , 한글을 갈겨쓴 것 같았습니다.
뉴욕서 샀다고 하대요.
그런데 이틀 지나고 오늘 집에 오는 신문 주말판에 장사익 선생이 떡하니 나왔습니다.
보시는 것 처럼 자신이 쓴 글씨로 디자이너 이상복이 만든 옷을 입고서요.
' 글씨는 마음이더라 '는
장선생의 말처럼 , 아니 그의 유장한 노래소리처럼 글씨도 자연스럽게 ,
그러나 빠지는 것 하나없이 그대로 온전하게 자연같은 편안함을 주내요.
디자이너 이상복이 자신의 글씨를 넣어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는 장사익
장사익 - 노래 - 글씨 - 글씨가 디자인된 옷 - 이상복 - 심산 - 진중권 - 호모 코레아니쿠스
이리 연결되며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러 나가는 것에 대해 끔찍하리만치 치를 떨었던 내 젊은 날이 생각났습니다.
또 개근상 하나 받으려고 거기에 목메며 , 아니 그렇게 하루도 안 빠지고 제 시간에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마치 진리인 양 살았던 지난 시절들이 '풋' 웃음으로 나왔습니다. ( 겉모양살이는 안 그랬겠지만 마음은 기계처럼 어딘가에 맞추려고 기를 쓰고 살았으니 )
마음은 프리랜서였지만 실은 머슴처럼 살았던 세월이었습니다.
평소 진씨의 그 아웃사이더적이지만 실은 가운데 - 진실에 가까워보이는 시원한 글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 진씨의 주장을 보면서
사람이 산업화 과정에서 분명 개조된 것이 이제사 깨들음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마흔 일곱에 가수가 된 장사익 선생과 그리고 그의 아나로그적인 생활과 사고에서 나온 글씨가 상품이 되고 첨단 디자인이 되는 것을 보면서요. 우리 아이들도 아니 내가 그 장사익 선생처럼 살 수 있기를 원하는 마음이 더해졌습니다.
한 생각만 바꿔보면 원시는 실은 첨단일수도 있으니까요.
새벽에 일어나 지금 서남아쪽은 우리보다 시간이 3시간 늦지 하는데 , 우리가 새벽 4시면 서남아는 1시니까 실은 우리보다 빠른 것인데 합니다.
그러면서 생활속에서는 아이들을 대기업이 원하는 부품으로 만들려고 발버둥치는 내가 웃겼습니다.
하라는대로 하고 가라는대로 가고 하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인간형을 만들려고 매일 잔소리를 해대고 있었습니다.
그냥 생긴대로 살아야 할 인간들이 점점 디지탈 기계처럼 변해가는 세상에서 그 반대흐름을 만나면 우선 반갑고 좋습니다.
그래서 또 이리 난해하게 또 알만 한 이들을 들먹거리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말이 많아지면 중심이 내게 있지 않고 상대에게 넘어가서 불안해지는 법임을 알면서도요.
진중권의 호모코레아니쿠스
좀 편하게 좀 한가하게 나를 살피며 많은 것들과 아날로그적인 교류를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