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엄마 뱃속에서 머리부터 기다란 질에 박아넣고 , 그 어둔 길을 틀어 틀어 돌아 돌아
햇빛 본 날입니다.
어제 도반들이 미리 와인 파티를 해주었지요.
제가 나왔다는 날이 달의 날로 오늘이라고 엄마 말하시니 그러려니 하는 것이지 제가 제 사주를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니 내가 본 바 없는 내 사주가 내 인생에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벌써 40 중반의 고갯마루에 섯내요. 여러 사람들의 지나간 살이를 보니요.
참 봄날처럼 사람살이가 빠릅니다.
연분홍치마 휘날리며 , 헤실 헤실 웃으며 머리에 참꽃 꽂고
막걸리 냄새 풍기며 바다 모래밭을 걷고 싶내요.
장사익 선생처럼 넘어가게 부르지는 못해도 그 노래 들으며 마음으로 ,
내 봄날을 아로새깁니다.
가슴이 부푸내요.
그러다가 풀썩합니다.
오늘은 남편 배에 머리 두고 가장 편안한 잠을 자볼 참입니다.
누가 뭐래도 그래도 그 남자 - 내 남편과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아직도 가끔 가슴이 뛰거든요.
샛서방 하나 두고 보기도 아까워서 안달하는 미친년 마냥 그런 마음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또 속으로 ,
' 저새끼 오늘 오다가 콱 안죽나 '
할 때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죽였을까요?
부부란 무엇인지 ?
생각해봅니다.
여보 여보 하며 등밀어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 기쁨 누리라고 보내고 , 그 기쁨으로 나도 즐거울 수 있는 그 경지 !
스승이신 법륜 스님이 말씀하신 그 곳에 가닿고 싶습니다.
호적에 등재된 '처'라는 것을 동아줄 삼아 남편 목에 걸고 , 그가 즐기고 좋아하는 일은 죽어라고 동아줄 조여서 못하게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마치 '妻'란 직업의 본질은 '夫'를 괴롭게 만드는 것인양 산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그 '처'라는 직분을 다하지도 못하면서.......
왜 내 생일에 엄마보다는 남편이 생각난 것일까요?
역시 봄날은 , 연분홍 치마는 , 노래 가락은
여자는 남자로 해서 남자는 여자로 해서 떠올리기 쉬운 것들인가 봅니다.
한 3박 4일 아무도 없는 태평양 가운데 무인도로 가서 남편과 본능이 시키는데로 먹고 자고 해보고 싶습니다.
두 마리 짐승처럼 그렇게
산에서는 평생 살아도 바다에서는 하루 이틀도 못살 것 같은 내가 왜 정념과 바다는 연결시키는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누구에게 주입받은 것일까요? 그냥 내 안에서 생긴 것일까요?
이리 아침에 한가할 수 있으니
이만하면 참 복에 겨운 삶이라 합니다.
한바탕 꿈이지 합니다.
작년 1월 고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