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순례기 ( 8 ) - 바이샬리 , 꼴루아 라트 , 카쿳타강 , 열반당
바이샬리 부처님 진신사리탑 앞에서 유애경 보살님과
바이샬리 사리탑
부처님 진신 사리가 있는 바이샬리로 가기 위해 새벽같이 길을 나섰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화장하고 남은 사리는 당시 각국에서 모시려고 했기 때문에 여떫 등분하여 모셔졌다. 그 중에서 리차비 족이 모신 진신사리탑이 현재 바이샬리에 있는 사리탑이다.
사리탑에 도착하여 탑을 향하는 세 갈래 길에 우리 순례단은 열을 지어 앉았다. 아직 새벽 이슬도 깨지 않은 시간이어서인지 아님 진신 사리 앞에 선 떨림 때문인지 이제까지의 그 어느 곳보다도 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예불을 하는데 부처님이 눈 앞에 계시는 듯 감격스럽고 눈물이 났다.
진신 사리를 참배한 공덕인지 우리 일행들은 저마다 가슴에 기쁨이 넘치는 듯 했다. 나도 이제 아무리 뒤로 넘어져도 누군가 받아줄 것 같은 묘한 편안함을 느꼈다. 그 느낌은 아주 사실적으로 다가와서 아직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누워도 될 듯 싶었다.
하루 일정이 많이 바쁜지라 원후 봉밀터( 꼴루아 라트 ) 로 향했다. 부처님께 원숭이들이 꿀을 봉양했다는 곳으로 아쇼카 왕이 사사자 석주를 세운 곳인데 , 사사자가 온전한 것은 이제는 다 박물관에 있고 사자 한 마리가 석부 위에 앉은 온전한 석주가 이 곳에는 잘 보존되어 있었다.
원후봉밀터
람쿤트라 불리는 연못. 한 때 메꾸어 진 것을 다시 복원해 둔 것이다.
원후봉밀터 앞의 민가에 있는 바나나 꽃
법륜 스님이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려고 줄을 세운 곳에 김홍신씨가 같이 앉아 있다. ( 스님은 사탕을 주시면서 '이 값으로 다음 생은 나에게 주어야 한다 '는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신답니다 )
날이 좋아서인지 석탑을 돌면서 ' 석가모니불'을 욀 때 하늘로 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기분 좋은 어지럼증이었다. 연못을 가르며 부는 바람이 산들 산들 전형적인 우리나라 봄날씨 그대로였다. 유적지 앞의 마을들은 가난했지만 참 편안한 곳이었다. 그래도 바나나 나무 아래 볼 일을 보러 들어간 순례객 하나는 가사로 받은 망토를 잊어버렸다고 했다. 놔 두면 누구나 가져가도 좋다는 신호라는 스님의 말씀이 맞았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신 카쿳타강
작은 개천 같은 카쿳타강에 수백명의 순례객이 모이자 신기해서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
카쿳타강 가의 무슬림 무덤들
순례가 며칠 지나니 이제 빵구 나는 버스도 있고 길도 생각보다 울퉁불퉁이라 해가 질 무렵에 카쿳타강에 닿았다. 강으로 가는 길은 똥천지였다. 인도 비하르 주 사람들은 어디나 물이 가까운 곳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또 이슬람 무덤들이 색색깔로 즐비했다.
춘다의 공양을 드시고 피똥을 싸시면서도 춘다의 공양을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한 공양으로 무상정득정각을 이루기 전의 수자타의 공양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말씀 하신 곳이다.
이제는 폭 2미터도 안되는 마을 개울 같은 카쿳타강에서 석가모니 세존의 위대하심을 절절히 느낀다. 우리 일행들은 강가에서 손도 씻고 발도 씻는다.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마치 당시 부처님의 병환을 지켜보는 것처럼 마음이 안타까움이 일었다.
그리고 이제 쿠시나가르의 열반당으로 향한다. 그런데 지뢰를 밟은 이가 있어 차 안은 참 향기롭다. 이미 땅거미가 지는데 열반당에 도착했다.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누우셨던 사라수 나무도 분간이 잘 안되어 실루엣만 보였다. 우리 일행은 열반당을 에워싸고 예불을 올렸다. 그리고 좁은 열반당으로 들어갔다.
쿠시나가르 열반당
죽음은 앞 둔 시간에도 외도인 수바드라에게 팔정도를 설하시고 그를 출가시키셨다. 그리고 숨을 거두기 직전에도 친구가 친구에게 묻든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물으라고 하신 여든 한 살의 부처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쏫아졌다.
" 부처님 감사합니다 "
" 부처님 감사합니다 "
" 남은 일들은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
부처님 누우신 곳에서 우린 스님의 선창으로 이말을 염불처럼 하면서 눈물을 비오듯 쏫았다.
달도 없는 완전한 어둠 속이었지만 당시의 사라수 나무가 있었던 곳을 다시 보고 또 부처님의 다비식이 있었던 작은 강을 보러 갔다. 강 가는 이제 힌두 수행자 몇과 가난한 이들이 눈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는 스리랑카 절로 들어갔다. 매일 밤 늦게 숙소에 도착하고 새벽에 나가느라 숙소가 도대체 어떤 곳이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날의 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