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순례기 ( 5 ) - 네이란자라 강을 건너 보드가야로
네이란자라 강
아직 초사흘 달빛으로는 사위를 분간할 수가 없는 새벽이다. 하지만 전정각산 위에는 싯다르타 태자가 보고 성불했을 샛별이 밝다.
그리고 새벽의 공기는 폐부를 시원하게 해준다.
싯다르타가 전정각산을 떠나 걸었을 길을 따라 간다. ( 혼자 왔거나 또는 몇몇이 왔다면 이 새벽 이렇게 길을 나설 수 있었을까? )
마치 브이자 편대를 유지하는 가을 새떼들처럼 간다. 마음은 그렇게 날아가는 느낌이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고 그저 공기의 저항을 기분좋게 헤쳐가는 느낌이다.
앞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데 산 밑 불가촉 천민들의 움막에서는 인기척이 있다. 몇몇 명상하는 이들 ( 아침에 똥 누러 나온 사람들 )이 낯선 새떼들에 놀란다.
검붉은 해가 숲 뒤에서 비현실적으로 큰 모습으로 쑥 떠오른다.
해를 바라보며 마치 한국의 3월 봄바람 같은 강바람을 맞는다.
고운 모래 위를 걷는다. 백사장은 길어서 마치 사막을 걷는 것 같다.
맨 발인 이들도 있다. 그래도 새벽인지라 잠깐을 못가고 발이 시려한다.
싯다르타 태자가 고행을 버리고 중도를 찾아 부다가야로 가면서 네이란자라 강에 목욕을 하고 기력이 쇠해 아사나 나무를 잡고 언덕으로 올라간 그 강가에 햇살이 퍼진다. 물은 맑았다. 우리도 여울처럼 줄어든 물길을 건너느라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었다.
빛살을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오른다. 감사한 눈물이 가슴에 고인다.
' 아 ! 이런 극적 감동을 연출하는 법륜 스님은 도대체 누구인가? '
강가에 올라 수자타가 소를 돌보았을 너른 터에 앉아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준비해준 아침을 먹는다. 달걀과 오렌지다.
그리고 이 자리에 들어 설 명상센타에 대한 말씀을 듣는다.
낮은 초막 지어놓고 수행자들은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지내는 것이다. 그 옛날 싯타르타 태자가 그러하였듯이 걸식은 아니지만 참 많은 울림이 있을 명상이 될 것이다.
우루벨라 가섭이 수행했던 곳을 찾은 부처님이 독용과 하루를 재냈다는 굴 - 미치 깊은 우물 같다.
부다가야로 가기 위해 강변의 우루벨라 가섭터를 지나 수자타 집터를 향해 간다. 그런데 마을의 구걸하는 이들이 다 나섰다.
" 아줌마 십원만 줘 "
내 귀에는 꼭 그렇게 들리는 말을 하면서 각기병으로 다리가 오그라진 아이들과 청년들과 마른 아이들과 가끔 아이를 안은 어른까지 따라온다.
강변을 지나 부다가야로 가는 준비된 버스를 타려했지만 차가 강변 가까이 못 들어와 길을 바꾸어 수자타 마을을 지나 차를 타러 가는데 , 우리 일행은 부다가야 대탑에 사시 공양을 올리는 권리를 얻어놓은 터라 발걸음이 빨랐다. 마음은 더 바빳다. 두줄이어야 할 줄이 이제는 그 길이만큼의 수로 늘어난 줄이 되어 강의 모래사장을 걷는다. 그 소리에다가 마치 메뚜기떼처럼 '웅웅'거리는 걸인들의 소리가 괴롭게까지 들렸다. 이미 일핼중에는 귀를 막는 이들이 많다. 벗어나고 싶었다.
한 순간 그 소리를 듣기 좋은 새소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마을에는 여러 불교 단체들에서 세워만 두고 관리가 안되는 시멘트 벽뿐인 학교들이 꽤나 눈이 띄었다. 수자타 아카데미를 흉내낸 것이리라.
부다가야에 도착했다.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입구에는 티벳 난민들의 천막 식당이 즐비했다.
대탑을 3번 돌며 석가모니불을 연호하고 공양을 올린다. 탑 주변은 완전히 난민촌을 방불케하는 승려들과 순례객들이 모여있다. 이 겨울 시즌이 제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기인 것이다.
보드가야 대탑
대탑 주변의 승려와 순례객들
깨달음의 장소에 와서 맑은 기분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 때문인지 고요하게 안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부처님 당시 있던 보리수의 증손자뻘 되는 보리수에 경배도 하고 부처님이 포행하신 발자국에 이마도 대고 또 탑 뒤에 가서 절도 한다.
그런데 아직 불편함을 못 푼 남편과 전화를 하려고 다니느라 자유 시간을 많이 허비한다. 참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했는데 , 남편은 아이 편에 돈도 보내고 잘 있다 오라 등 토닥여 주는 말도 한다. 기분이 좋아지고 그간의 불편한 마음이 다 녹는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장에 와서 불편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결실을 본 것이다. 감사했다.
버스 정류장 근처의 천막 티벳 식당 ( 티벳인이 아니라 인도인이 하는 ) 에 가서 툭빠와 스프링 롤을 먹는다. 간장과 식초에 넣은 고추를 좀 달라는데 고수와 고추 레몬을 다져 가져온다. 맛이 잘 어울린다.
대탑의 부처님 - 남방 불교인들이 치장해서 화려하다
무챠린다 연못 , 부처님이 선정에 드셨을 때 머리가 9개 달린 용이 와서 부처님의 몸을 감싸 비바람과 천둥을 막아주었다고 한다.
차가 떠날 때까지 아쉬움과 혼돈이 남는 부다가야를 돌아보다가 차가 움직일 때 집어타고 스자타 아카데미로 간다.
밤에는 강당에 모여 수자타 아카데미의 역사를 보고 듣는다. 그리고 울산 보살들의 퍼포먼스 , 어떻게 정토회 멤버들은 술 한 잔 안 마시고도 저리 잘 노는 것일까?
고향 집에 온 듯 완전한 어둠이 있는 수자타 아카데미의 밤이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