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모친이 칠순이 넘어서 작은 빌라를 구입하셨습니다.
이사시에 도배와 장판 씽크대만 바꾸려고 했는데 , 공사날 집에 어디선가 물이 새는 것을 알았고
물길을 잡다보니 ' 기왕에' 하면서 대문만 빼고 다 뒤집는 대공사가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자식들은 다 집 지니고 사는데 ( 시댁에 살던 분가해 살던 ) 부모님만 젊어 몇년 시절 말고는 30-40년 전 돈 그대로 가지고 남의 집살이를 전전하셨습니다.
그간 간간히 부모에게 집을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얼마나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는지 모른답니다.
정릉 청수장 입구 동네 작은 절 밑에 아파트 19평형 정도의 작은 빌라를 사셨지만 바람 잘 통하고 산을 뒷배삼아 안정감 있고 ,
4층이라 올라다니긴 힘드시겠지만 운동되고 ,
50년 살림살이 , 아직도 자식들 김치며 된장 고추장 해먹이시느라 시골 장독대 못지않게 많은 그 항아리들 해서
보통 아파트나 웬만한 주택은 엄두도 못냈는데 , 옥상이 있어서 해결되고
또 옥상을 마당삼아 봄.가을이면 자식.손자들과 삼겹살 파티라도 하실 설레임에 시집가는 새색시 못지않은 기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 50년 묵은 살림살이를 펴보니
모친은 자식들 다 모아서 맛난 것 먹이고 집에서 재우실 욕심에 , 후라이판이 몇 개나 되고 이불은 큰 둥치로 세개나 되고 ,
자식들이 사 준 옷이며 , 그 옛날 오빠가 해양대학 졸업하고 처음 받은 월급 명세서 , 오빠의 첫 외국 항해실습시의 빛바랜 사진들
자식들이 결혼하면서도 안가져간 책들 ,옛날 메모들 ......
최소 20-30년은 지난 종이쪽 , 자식들과 관련한 작은 물건들까지 다 있어서 이삿짐을 푸니 집은 폭발할 것 같았습니다.
다 버리라고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리고 하면서 버릴 이유를 찾는 딸들과 며느리에 맞서 엄마는 그것들이 아직 집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았습니다.
' 미쳐' '미쳐'를 연발한 나는 내가 경계에 팔림을 알아차렸지만 ,
노인이라고 우습게 보고 이삿짐 하루 늦게 보낸 이삿짐 센타와 싸우기 ,
집 고쳐준 이에게 작은 흠집까지 잡아내어 컴플레인 하기 ,
사람들 척 보고 분별해서 분류하기 ,
샷시색 하나 , 벽지와 바닥재를 내가 골라놓고도 디자이너가 디자인 개념없이 작업했다고 원망하기 ,
일 순서 놓치고 마감시마다 없어서 집이 곳곳에 싸구려티난다고
인테리어 시공자가 더 해준 것들의 감사함은 잊고 비판할 거리만 찾았습니다.
또 빌라에 사는 이들의 청소와 쓰레기에 무신경함에 얼마나 욕을 했는지
입에 칼을 지닌 것 같았습니다.
보청기 잃어버리고 동문서답하는 엄마에게 화내기.....
엄마를 , 내가 어랜지 한 일을 나로 삼아 얼마나 경계에 끄달리며
화내고 , 짜증내고 , 후회하고 , 분해하고......
그 과정서 내가 나를 내세우기 위해 과장하고 거짓되게 말하고 ,
지금 이룬 것이 없어 과거를 내세우고
내 지난 날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얘기하고
남을 비판하고 비판하다가 비난하고......
그리고 새벽 기도시 참회하다가 오열을 터트리고
무엇보다 몸에 끄달려 조금이라도 내맘대로 안돌아가면
'관세음보살'을 외며 외호해달라고 매달리고......
참담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본 내 모습은 , 누구의 말에도 처음에 '예'하며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다른 이들의 말을 자식이든 부모든 , 일하는 이든 누구의 말이든 튕겨내고 사납게 밀쳐내며 내 말만 들으라고 명령하고 지시하고 부탁이라는 미명하에 나를 고집하고 ......
수행자이면서 이리 유치찬란하게 이리 매사 사사건건 경계에 끄달려 화를내며 세상에 굴림을 당하다니요.
그러면서도 새벽기도 빼먹지 않는 내가 대견해서 칭찬해주었고 ,
적어도 노가다하는 사람만큼은 내 일상에 충실해야지 않겠나 하고 집 일 하시는 분들 보고 새삼 깨닫고
또 내가 경계에 팔려서 '계'를 어겨 마음의 평정을 잃고 있음을 안 것이 감사했고,
무엇보다 '지혜롭고 따듯한 사람이 되어 Happy Together ' 하자'고 원을 세운 것이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경계에 팔리는 몇 순간들도 알아차리고 '턱' 놓은 줄 알고 , 경계에 팔려 화가 오를 때 눈을 감고 잠시 명상이라도 하며 그 순간을 잘 지나가게 한 내가 참 이뻤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난 분들이 다 부처이심을 알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중생의 힘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는지 잘 알았습니다.
이제 간간히 또 며칠 가면서 남은 짐들 정리해야지요.
마치 제가 일을 다 한 것 같은데 , 젖먹이 두고와서 나보다 더 늦게 엄마 집 다 닦고 , 부엌 살림 정리한 동생이나 그간 부모님 모신 올케에 비하면 나는 그저 집 수리시 간간히 가서 감독했다고 생색만 낸 셈입니다.
엄마랑 같이 아버지랑 같이 봄이면 산지사방 진달래 피고 연초록이 아롱다롱할 때에 산에들어 부모 살아계심에 한 껏 취해봐야겠습니다.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지금 이대로 감사합니다. 참 감사합니다.
지난 1월 아이들이 겨울방학 마치고 이도로 가던 날 엄마는 꼬깃 꼬깃 아껴 둔 달러돈을 손녀들에게 턱하니 200불이나 내놓으셨습니다.
저는 얼마나 발벗고 뛰어야 엄마 발 뒷꿈치라도 따라갈지 모르겠습니다.
그간 소홀했던 내 새끼들 , 남편에게도 제대로 된 밥상이라도 차려내야겠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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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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